끝내주는 인생

🔖 나에게 사랑은 기꺼이 귀찮고 싶은 마음이야. 나에게 사랑은 여러 얼굴을 보는 일이야. 사랑한다면 그 모든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부지런해지고 강해져야 해.
아프게 배운 건 잘 잊히지 않아. 늑대와 고양이의 죽음에서 배운 것들. 이 배움은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게 해. 동물들의 각별한 형제인 너. 강하고 약한 너. 결점투성이인 너. 절대로 영원하지 않을 너...... 너무나 유한한 너를,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지. 나중에 아프더라도 지금은 힘껏 그래야지.
그게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최고의 나야. 고통과 환희가 하나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는 듯이, 비와 천둥의 소리를 이기며 춤추듯이, 무덤가에 새로운 꽃을 또 심듯이, 생을 살고 싶어.

🔖 고작 오 분간의 사바아사나지만 나는 매번 멀리 다녀온다. 과거로도 가고 미래로도 간다. 가보지 않은 대륙으로도 가고 아직 쓰지 않은 글도 상상한다. 그러다 울음이 날 때도 있다. 생이 끝난다는 것을 생각하다가 그렇게 된다. 지금 누워 있는 자세처럼 언젠가 송장이 될 나를 생각하고 마찬가지로 유한하고 허망한, 사랑하는 이들의 몸을 생각한다. 함께 살았던 고양이 탐이도 생각한다. 죽은 탐이의 몸이 얼마나 빨리 딱딱해졌는지도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너무 모른다. 그저 나중에 꼭 그렇게 된다는 것만 안다. 송장 자세로 누워 그 사실을 기억한다. 사바아사나 속에서 죽음에 대한 상상력에 속절없이 끌려가고 사로잡힌다. 그러다 요가 선생님이 작게 징을 치는 소리가 들리면 다시 생의 시간으로 돌아오곤 했다.

🔖 "요즘 '유래'라는 말을 계속 곱씹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제 아이들인 예지와 예서의 유래는 당연히 진형과 순일이라 생각해왔는데 요. 오히려 저의 유래야말로 예지와 예서가 아닐까, 저의 유래는 제 아내인 순일이 아닐까 싶은 거예요. 이런 세상 살아 무엇 하나 하는 사춘기적 우울을 여태 앓고 있는 저에게, 삶의 지속가능성은 예지와 예서 그리고 순일로부터 유래하거든요. 유래는 존재의 기원일 텐데요. 제가 순남씨를 알게 된 건 슬아 작가님 덕분이므로 적어도 저의 세계에서 순남씨는 슬아 작가님으로부터 유래하죠. 고양이 탐이도 작가님으로부터 유래하고요. 여성의 계보도 그렇습니다. 작가님이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잊힌 여자의 계보가 복원되죠. 우리는 분명 누군가로부터 유래한 사람들인데요. 그가 저를 낳은 사람일수도 있겠으나 저를 기억하게 만드는 사람 들일 수도 있겠어요."
그러자 이 책이 끝나도 끝나지 않으리란 걸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삶이 끝났어도 나를 통해 선생님의 마음속에 살아있듯이, 책이 내 손을 떠난 후에도 누군가에게는 이제 막 시작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